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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이름, 김부장 ​'서울 자가에 대기업 다니는 김부장.'​이 제목에 왜 이리 가슴이 묵직해지는 걸까? 책을 읽고 드라마를 보며 자꾸만 마음 한구석이 아려온다. 그건 아마도 그 '김부장'이라는 이름이 단순히 소설 속 인물이 아니라, 지금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의 또 다른 이름처럼 들리기 때문일 거다.​우리는 어쩌면 모두 '김부장'이 되기 위해 앞만 보고 달려왔는지 모른다. 젊음을 바쳐 맹렬히 공부했고, 치열하게 경쟁하며 조직에 들어갔다. 야근과 주말 출근을 밥 먹듯 하며 '내 집 마련'이라는 목표 하나에 청춘을 걸었다. 그렇게 얻어낸 '서울 자가'와 '대기업 부장'이라는 타이틀.​그것은 분명 성공의 상징이었고, 가족을 지킬 수 있는 든든한 성채라고 믿었다.​그런데 왜일까. 그 모든 걸 손에 쥔 김부장의 뒷모습은 위.. 2025. 11. 9.
세대별 관찰로 통해 얻은 흥미로운 점 사람이 살아온 세월을 두고 그 말과 귀의 쓰임을 살펴보는 일은 참 흥미롭다. 우리는 종종 무대 위의 정해진 역할처럼, 나이에 따라 말하고 듣는 방식이 달라지는 풍경을 목격하곤 한다.​청년의 시절, 세상은 온통 물음표로 가득하다. 경험이란 백지는 채워져야 할 것들로 분주하고, 나의 이야기보다는 남의 이야기가 더 크고 단단해 보인다. 그래서 청년은 주로 듣는다. 세상을 배우고, 선배의 조언을 흡수하고, 동료의 의견을 경청한다. 때로는 자신의 목소리를 내는 것보다 듣는 것이 미덕이라 배운다.​중년에 이르면, 삶은 어느덧 자신만의 서사로 빽빽해지기 시작한다. '내'가 중심이 되는 문장들이 늘어난다. 세상에 대해, 삶에 대해 할 말이 생긴다. 그래서 중년은 말한다. 물론, 사회적인 관계 속에서 듣는 시늉은 잊지 .. 2025. 11. 1.
막내에 대한 단상 유독 막내들은 부모와 더 살갑게 지내는 것처럼 보일 때가 많다. 부모가 쏟는 애정의 총량이 막내에게 유난히 커 보이기도 하고, 오고 가는 대화의 온도도 가장 따뜻하게 느껴진다.그저 '막내니까' 받는 특혜일까? 단순히 순서가 마지막이라서 그런 건 아닐 거다. 아마도 부모가 막내와 나누는 '관계의 질'에 있을 거다. 더 자주 안아주고, 서슴없이 사랑을 표현하고, 가장 편하게 속마음을 터놓는 그 열린 대화에 있다.첫째는 관리의 대상이다.첫째는 부모에게 '첫 작품'이자 '첫 과제'다. 모든 게 처음이라 서툴고 불안하다. 부모는 교과서처럼 아이를 키우려 애쓴다. 하나부터 열까지 계획하고, 확인하고, 바로잡으려 한다. 아이의 성공과 실패가 곧 부모의 성적표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사랑하지만, 그 사랑은 종종 '올바.. 2025. 10. 29.
미장원 가는 날 내게는 주기적으로 찾아오는 신호가 있다.머릿속이 엉킨 실타래처럼 복잡해지거나, 이유 없는 두통이 둔탁하게 울릴 때.​그건 '미장원에 갈 때가 되었다'는 신호다.​난 반 곱슬이라 조금만 방심하면 머리카락들이 제각기 영역을 주장하며 뻗어 나간다. 그저 외관만 지저분해지는 게 아니다. 그 헝클어진 머리카락이 마치 내 복잡한 상념들처럼 느껴진다.​머리가 아파오는 건 그다음 수순이다. 자라난 머리카락 끝이 예민한 두피를 콕콕 찌르기 시작하면, 그 물리적인 자극이 꼭 머릿속의 복잡한 생각들이 나를 찌르는 것처럼 느껴진다. 이번엔 그 복잡함이 먼저 찾아왔다.​익숙한 미장원 문을 연다. 하지만 내가 들어선 것을 아줌마가 바로 알아채길 기대해선 안 된다. 그녀는 이미 먼저 온 손님과 완벽하게 '그들만의 세상'에 빠져있기.. 2025. 10. 29.
우리가 잃어버린 감각 우리는 '특별함'이라는 병에 걸려 있는지도 모른다. 일상적인 것, 늘 곁에 있는 것에는 눈길조차 주지 않는다. 비가 그친 뒤 장엄하게 떠오른 무지개에는 감탄하지만, 사실 그 무지개가 '늘' 그 자리에 있었다는 사실에는 무감각하다. 그저 빛과 물방울의 조건이 맞지 않아 우리 눈에 보이지 않았을 뿐, 하늘은 단 한 순간도 그 찬란함을 품지 않은 적이 없었다. 우리가 '특별한 순간'이라고 부르는 것은, 사실 '늘 존재했던 것'을 우리가 마침내 '발견한 순간'일 뿐이다.사랑도 그렇다. 우리는 사랑을 얻기 위해 애쓰고, 사랑이 식었다고 절망한다. 하지만 사랑이 어떻게 공기처럼 사라질 수 있을까. 사랑은 늘 우리 곁에, 가장 가까운 공기처럼 흐르고 있다. 다만 우리가 숨 쉬는 것을 잊듯, 그것을 표현하는 감각을 잃.. 2025. 10. 29.
손끝으로 느끼는 자유와 편안함 우리는 참 많은 도구에 둘러싸여 산다. 식탁 위에는 숟가락과 젓가락이, 책상 위에는 펜과 키보드가 정갈하게 놓여있다. 이 도구들은 우리를 편하고, 효율적이며, '교양 있게' 만든다. 하지만 때로 그 견고한 편리함이 우리와 세상 사이에 얇은 막을 만들고 있음을 알지 못한다.라오스를 여행하며 그 막을 걷어내기로 한 것은 작은 결심에서 시작됐다. 현지인들의 삶에 한 걸음 다가가고픈 마음에 수저를 내려놓고 손으로 식사를 해보기로 했다. 처음의 감각은 단연 어색함이었다. 밥알이 손가락 사이로 흩어지고 끈적한 소스가 손바닥을 적셨다. 문명의 이기를 포기한다는 것은 익숙한 세계와의 잠시 동안의 결별 선언처럼 느껴졌다.하지만 그 어색함은 이내 경이로운 발견으로 바뀌었다. 쇠붙이라는 매개체 없이 음식과 직접 마주하는 순.. 2025. 10. 28.
마음의 빈자리, 여유 우리는 흔히 '여유'라고 하면 넉넉한 지갑, 넘쳐나는 시간, 탁 트인 넓은 집을 떠올린다. 물질적인 풍요와 남는 시간을 갖는 것이 곧 여유 있는 삶이라 믿는다. 하지만 텅 빈 시간 속에서 불안해하고, 많은 것을 가졌음에도 조급해하는 우리를 보면, 여유란 그런 외적인 조건들로만 채워지는 것이 아님을 깨닫는다.​여유란 물질이나 시간, 공간이 넉넉하고 남음이 있다는 뜻이기보다, 사실은 우리 마음속에 있는 '정신적 여백'이다. 그 여백은 타인을 향한 이해와 배려, 그리고 기꺼이 한발 물러설 줄 아는 양보의 마음에서 나온다. 꽉 찬 방에는 새로운 것을 들일 수 없듯, 내 생각과 욕심으로 가득 찬 마음에는 타인이 들어설 자리가 없다. 여유로운 마음은 상대방의 입장을 헤아려 볼 줄 알고, 날카로운 말 대신 따뜻한 시.. 2025. 10. 28.
소박한 욕심, 삶의 증거 우리의 삶은 어쩌면 이 '욕심'이라는 이름의 실을 따라 걷는 여정인지도 모른다. 그것은 나를 움직이게 하는 동력이었고, 때로는 나를 잠 못 들게 하는 족쇄였다.​초등학교 시절, 나의 욕심은 아주 작고 명확했다. 우선, 읽을 책이 있었으면 했다. 닳고 닳은 교과서 말고, 네모난 활자 속에 다른 세상을 담고 있는 그 책 말이다. 그건 세상에 대한 첫 번째 갈증이었다.​그리고 도시락. 매일같이 도시락 통을 채우던 고구마. 달콤했지만, 친구들의 하얀 쌀밥과 형형색색의 반찬 옆에서는 어쩐지 초라하게만 느껴졌다. 고구마가 아닌, 그 '다름'을 먹고 싶었다. 그것은 아마도 평범함에 대한 욕심이었을 것이다.​몸이 고단할 때의 욕심은 더욱 절실했다. 땡볕 아래 밭을 맬 때면, 이 지긋지긋한 밭일만 안 하고 살았으면 좋겠.. 2025. 10. 28.
젊음을 만지는 손 ​7년째 같은 미장원에 다닌다. 그곳의 '아줌마'는 오늘도 묵묵히, 하지만 더없이 익숙한 손길로 내 머리를 매만진다. 사실 내 머리는 짧아서 크게 손댈 것도, 바꿀 것도 없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그녀는 내가 원하는 그 스타일을 7년 동안 한결같이 지켜왔다.​문득, 가위질 소리가 경쾌하게 울리는 거울 속을 보며 내가 농담처럼 말을 건넸다."남의 머리를 만지는 사람은 머리에서 나오는 좋은 기를 받아서 젊음이 오래 유지된다네요. 아줌마가 7년 전 내가 처음 봤을 때나 지금이나 똑같으신 걸 보니, 그 말이 맞나 봐요."​물론 아무 근거 없는, 그저 기분 좋으라고 즉흥적으로 지어낸 이야기다. 하지만 말을 뱉고 나니, 아주 틀린 말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머리를 다룬다는 것은 본질적으로 긍정적인 행위다. 사람.. 2025. 10. 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