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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ulture & Book

그때 그 시절2. 할머니의 미니 스커트

by daekirida 2015. 5. 5.

내가 7살때 일본에 계신 고모할머니(왕고모)가 고모할아버지를 여의고 적적해 하며 국내에 들어와 촌에 있는
우리집에 한동안 기거하고 계셨다.
일본에서는 그나마 자유분방한 생활을 하다가 국내, 게다가 촌구석인 우리집에 와서 오빠인 할아버지의
통제를 받게되니 많이도 갑갑해 하는 듯 하였다.
그나마 그 통제를 조금이라도 벗어나기 위해서는 일본에서 가져온 '동동구루무(화장품)'라도 팔아
밥값, 또는 가계에 조금이라도 보탠다는 명분으로 허가낸 외부 출입을 하셨다.

때론 일을 나가지 않으실때는 몰래 바지춤에 숨겨둔 담배도 피우시고, 시도 읽고, 노래도 부르시곤 하였다.
나는 그런 할머니가 별로 마음에 안들었다. 왜냐면 나와 잘 놀아주지도 않고, 일본 얘기며 알아듣지도 못하는
철학적인 얘기만 하셨기 때문이었다.

어느날 나는 하도 심심해서 삼촌이 하던대로 망태를 꼬쟁이로 세워놓고, 그 밑에 싸래기를 조금 뿌려놓은 뒤,
새끼줄로 꼬쟁이를 당길 수 있도록 하여 참새를 잡는 시스템을 갖추었다.
그리고는 달아나는 새들에게는 가차없이 새총으로 난사를 하기위한 2중 공격 장비인 새총이 필요했다.
새총에 탄력을 주는 고무줄도 중요하지만 돌멩이를 장전하기 위한 가죽이 필수적이다. 이리저리 방안을 뒤지던중
고모할머니가 쓰는 장농안에서 가죽으로 된 짧은 치마, 미니스커트를 발견하고는 가위를 들이대는 순간.

"야 이놈아 니 뭐하노?"
"보모 모르나? 새총 만들라 쿤다 아니가. 이 짧은 치마 누끼고?"
"할매끼지 누끼고?" 하며 달려와 내 손에 있는 미니스커트를 빼앗았다.
"에이 할매가 이런 것 우찌 입노?"
"야 이놈아 할매는 여자 아이가"    

그때는 잘 몰랐지만 40년이 지난 지금 생각해보니, 40대 후반이었던 고모할머니는 그 시대에 걸맞지 않는? 신여성이었고,
비록 우리나라에서는 입지 못하는 미니스커트 였지만, 장농속에 몰래 숨겨놓고 보고 만지면서 자신의 마음을 달래고 계셨으리라.... 

40년전 그때 고모할머니의 그 미니스커트를 생각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