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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ulture & Book

그때 그 시절4. 간호원 팬티는 빨개

by daekirida 2015. 5. 5.

내가 7살때쯤 어느 초여름날의 일이다.
아침일찍 집앞 버느나무 중간에 걸려있는 확성기로 "새벽종이 울렸네", "좋아졌네 좋아졌어" 등 그 시대의
인기 건전가요가 몇곡 흘러나온 뒤, 마을 이장님의 술이 덜깬 가래 가득한 목소리의 알림이 있었다.
신산(승산, 진주시 지수면소재지) 보건소에서 취학전 아동들은 빠짐없이 예방접종 받으라는 것이다.
혹시나 농사일이 바빠서 참여율이 저조할까봐 일본 뇌염 모기에 한번이라도 물리면 반빙신이 되거나 죽을 수도
있다는 공포성 부연 설명도 빼놓지 않았다.

너도 나도 차려입고 엄마 손을 잡고서는 면사무소로 향하는 행렬이 눈에 띄게 많아졌고, 보건소에 도착하니
면내에 있는 또래의 아이들은 죄다 모여 있있고, 하얀 와이셔츠 입은 우락부락하게 생긴 아저씨는 고함치다 어르고
달래고 땀을 험뻑 빼며 줄 세우기에 여념이 없었다.

앞에서 주사 맞고 우는 놈, 그걸 보고 겁이나서 꽁무니 실실 빼거나 따라 우는 놈, 한쪽에는 그것과 상관없이 서로 싸우는 놈,
빨리 집에 가자고 보채는 놈, 그 와중에도 한쪽에서 자는 놈... 각양각색의 모습들이 파노라마 처럼 흐르며 복잡하게 뒤섞여 있었다.

그런데 그 중 한놈(나를 지칭한다)이 주사 맞을 차례가 되었음에도, 한참을 찾아 불러도 대답이 없는데...
열심히 주사를 놓고 있는 간호원(당시의 용어)들 사이에 쪼구려 앉아서 두 간호원이 주사놓기에 여념이 없는 틈새를 이용하여
흰색의 원피스 안을 이쪽저쪽 올려다 보고 있었던 것이다.
(그 당시 주사를 맞는 사람과 간호원사이에는 허리정도의 나무로 된 간이 바리케이트가 쳐져 있었고, 간호원은 서서 주사를 놓아
주었으며, 나는 그 바리케이트 안으로 들어갔던 것 같다)

그 모습을 발견한 어머니는 나의 머리를 계속 쥐어박고, 토끼 귀를 잡아 끌듯 끌어내며, 왈
"우찌 그리 지 애비나 자식이나 계집 밝히는 것 똑같노. 싹수가 노랗다 노래." 

그러나 나는 동네에 돌아와서 애들을 모아놓고 자랑하듯 말했다.
"너거들 간호원 팬티가 무슨 색깔인 줄 아나? ...... 자슥들.빨간색 아이가"
그 당시 두 간호원 아니 간호원 전부는 마치 약속이나 한 것처럼 모두 빨간색 팬티를 입고 있었다.
그 뒤에 안 사실이지만 그 당시 여자 팬티는 대체로 빨간색이었던 것 같다.

 원숭이 엉덩이는 빨개, 빨간 것은 사과....를 개사하여
"간호원 팬티는 빨개, 빨간 것은 사과..."로 바꾸어 부르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