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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y home205

어린이날의 나들이 어린이날이다. 막내가 아직 초등학교 2학년인 관계로 집에 그냥 있지 못하고 차로 5분거리인 초전공원으로라도 나가지 않으면 안될 것 같아 그곳으로 방향을 잡았다. 어린이날 공식행사 및 게임, 중고장터, 각종 유/무료 체험행사에도 참가하면서 나름 아직 씩씩한 아빠의 모습을 보여 주었다. 아이들은 생일, 크리스마스 다음으로 선물에 대한 기대가 크다. 어린이날은 어린이에게 3대 명절 중 하나라도 해도 무방하다. 따지고 보면 어린이 날은 '어린이'라는 공식적인 타이틀이 특정되어 있기때문에 어린이 아닌 누구에게 무엇과 어떤 것을 요구할 수 있는 공식을 마련해 준 셈이다. 그럼 부모, 그 중 아버지들은 어떨까? 내가 지나가다 본 맞은편의 아버지들의 눈.. 그 중 절반 이상은 눈에 힘이 빠져 있고, 동자가 약간씩 흐려.. 2015. 5. 5.
그때 그 시절5. 막걸리 심부름 어렸을 때 막걸리 심부름은 수없이 많이 해봤을 것이다. 햇볕이 쨍쨍 내리쬐는 5월의 어느 주말, 들판은 누런 보리와 밀로 뒤덮여 있었다. 어른들은 저마다 낫을 들고 보리를 베는 작업을 진행하고 있었고, 우리는 논두렁에서 개구리를 잡거나 또랑에서 미꾸라지를 쫓으며 물놀이를 하고 있었다. 논은 경지 정리가 제대로 되지 않았던 터라 논과 둑 사이의 경사도도 있었고, 또랑은 물을 댈 수 있는 저수지 같은 역할을 하기도 하여 아이들이 놀기에 좋기도 했지만 때론 위험하기도 했다. 저 만치서 부르는 할아버지의 목소리, "도가에 가서 술 한주전자 퍼뜩 받아 오거라이" 나는 동생과 같이 2L 술 한주전자를 들고 꼬불꼬불한 길과 논둑을 타고 들판으로 향하는데 술주전자의 무게 때문에 단숨에 가지는 못하고 30M, 50M 거.. 2015. 5. 5.
그때 그 시절4. 간호원 팬티는 빨개 내가 7살때쯤 어느 초여름날의 일이다. 아침일찍 집앞 버느나무 중간에 걸려있는 확성기로 "새벽종이 울렸네", "좋아졌네 좋아졌어" 등 그 시대의 인기 건전가요가 몇곡 흘러나온 뒤, 마을 이장님의 술이 덜깬 가래 가득한 목소리의 알림이 있었다. 신산(승산, 진주시 지수면소재지) 보건소에서 취학전 아동들은 빠짐없이 예방접종 받으라는 것이다. 혹시나 농사일이 바빠서 참여율이 저조할까봐 일본 뇌염 모기에 한번이라도 물리면 반빙신이 되거나 죽을 수도 있다는 공포성 부연 설명도 빼놓지 않았다. 너도 나도 차려입고 엄마 손을 잡고서는 면사무소로 향하는 행렬이 눈에 띄게 많아졌고, 보건소에 도착하니 면내에 있는 또래의 아이들은 죄다 모여 있있고, 하얀 와이셔츠 입은 우락부락하게 생긴 아저씨는 고함치다 어르고 달래고 땀.. 2015. 5. 5.
그때 그 시절3. 때려잡자 김일성! 우리동네를 들어서면 눈에 확연하게 들어오는 문구가 하나 있었다. 붉은 색, 궁서체 형식의 커다란 글씨로, 한 친구의 고향집 담벼락 전체를 차지하고 있었으며, 마을로 들어서자 마자 누구나 접하게 되는 랜드마크였다. "때려잡자 김일성" 언제부터 거기에 쓰여지게 되었는지는 확실하지는 않지만 아마도 박정희 군사 독재시절 반공정신을 극도로 강조하던 1974~5년으로 기억된다. 그 시대의 최대의 유행어는 단연 이승복 형님의 '나는 공산당이 싫어요'였고, 간첩신고를 통해 팔자를 고치는 사람의 사례가 복권당첨 되는 것보다 더 우월한 성공의 사례였다. 그리고 간첩은 머리에 뿔이 달려있고, 주로 새벽이나 밤에 산에서 내려온다는 속설이 있었다. 마을 어귀에는 여지없이 이런 표지판도 붙어있었다. "방공방첩", "간첩신고 50.. 2015. 5. 5.
그때 그 시절2. 할머니의 미니 스커트 내가 7살때 일본에 계신 고모할머니(왕고모)가 고모할아버지를 여의고 적적해 하며 국내에 들어와 촌에 있는 우리집에 한동안 기거하고 계셨다. 일본에서는 그나마 자유분방한 생활을 하다가 국내, 게다가 촌구석인 우리집에 와서 오빠인 할아버지의 통제를 받게되니 많이도 갑갑해 하는 듯 하였다. 그나마 그 통제를 조금이라도 벗어나기 위해서는 일본에서 가져온 '동동구루무(화장품)'라도 팔아 밥값, 또는 가계에 조금이라도 보탠다는 명분으로 허가낸 외부 출입을 하셨다. 때론 일을 나가지 않으실때는 몰래 바지춤에 숨겨둔 담배도 피우시고, 시도 읽고, 노래도 부르시곤 하였다. 나는 그런 할머니가 별로 마음에 안들었다. 왜냐면 나와 잘 놀아주지도 않고, 일본 얘기며 알아듣지도 못하는 철학적인 얘기만 하셨기 때문이었다. 어느날.. 2015. 5. 5.
그때 그 시절1. 텔레비젼에 대한 추억 우리동네에 전기가 막 들어오는 시점, 그러니까 내가 5살때인 1973년쯤 일거다. 할머니는 할아버지와 함께 한달 가량의 일정으로 일본에 사시는 고모할머니 댁에 다녀오셨다. 그 당시 우리나라와 일본의 격차(산업화 정도)는 한 20~30년 정도 차이가 나는 시기였으니, 일본에서의 TV 드라마는 상상을 초월할 정도였으리라. 일본에 다녀오셔서, 궁금해하는 동네 어른들이 모인 자리에서 'TV란 무엇인가'에 대한 설명을 죽 늘어놓으셨다. "그 다래비란 것이 방안에 있고, 다래비 안에서 전쟁이 막 벌어졌는기라. 그런데 갑자기 폭탄이 펑 하고 터졌는데, 방안에 연기가 자~욱하게 퍼졌는기라." "그래, 방안에 있던 사람은 괜찮고?" "하모, 다래비 안에서 일이 벌어져서 다행이지. 내 고마 숨을 못쉴지경이었던기라." 다들.. 2015. 5. 4.
슬림화, 심플화... 신문이나 인터넷 그리고 다양한 매체에서 쏟아지는 엄청난 양의 정보와 지식, 그 속에서 내게 유용하고 가치가 있다고 판단하여 취사 선택한 적지않은 정보 그리고 지식, 그것도 부족하여 돈과 시간을 들여 찾아다니며 갖는 오프라인 학습과 사이버 공간에서의 강의, 그리고 관심있는 분야에 대한 읽지 않으면 안될 것 같은 수 많은 책, 두번 펼쳐 볼 시간조차 없이 쌓여가는 스크랩과 메모... 풍요함속에서 빈곤을 느끼게 되고, 갈증은 더 커져오며, 시간은 더 부족하게 생각됨은 무슨 이유일까? 우리는 소유하는 것이 너무 많아졌고, 관리하는 것이 너무 많아졌고, 또한 얻고자 하는 정보와 지식이 너무 많아졌다. 어찌보면 살아가면서 대부분이 없어도 전혀 문제될 게 없는 것인 줄도 모른다. 슬림화,심플화가 필요한 시점이다. 2015. 5. 4.
중국인이 우리나라에서 영어회화를 가르친다? 평생교육원 중급영어회화에 다닌지 3달이 되어간다. 특이하게도 우리반은 중국인 유학생이 영어를 가르친다. 처음에는 좀 이상하게 받아들여졌으나 영어권 원어민이 가르치지 않는 이상, 우리나라 사람이 가르치거나 중국인이 가르치거나 별반 다르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에게 더 중요한 가치는 영어의 발음이 아니라 얼마나 입을 더 많이 여느냐, 얼마나 더 길게 많은 문장을 얘기하느냐 이다. 결국 선생이 한국인이든 중국인이든 원어민이든 우리에게는 크게 중요치 않다는 사실이다. 2015. 5. 4.
공연장 지각입장하는 관객, 오늘 주인공이 당신인가요? 최근 서울의 한 공연장. 무용 공연에서 50대 여성 관객이 휴대전화의 액정화면을 플래시처럼 전면으로 환하게 밝혀 관객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 10분 늦게 입장하며 어둠 속에서 자기 자리를 찾기 위해 밝힌 휴대전화가 문제였다. 공연마다 지각 관객들 때문에 일찍 온 관객들이 집중력을 잃는 피해가 많다. 문이 열릴 때마다 컴컴한 극장에 빛이 들어와 시선을 분산하고, 자리를 찾아가는 구두굽 소리도 거슬린다. 지각 관객은 그 줄 관객 시야를 완전히 가리거나 발을 밟고 지나치면서 직접적인 피해도 입힌다. 서울시내 한 공연장 관계자는 “특히 힐이나 샌들이 공연장 나무 바닥과 부딪쳐 나는 소리가 심할 경우 주변 관객에게 피해가 크다”고 말했다. 또 다른 공연장 관계자는 “(지각 관객이) 많을 때는 10%에 달하는 .. 2015. 5. 4.